“새로운 창조물”, (고후 5:17), 주일 오후 성경공부 (2020. 3. 23)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잉태해서 낳으면 한 인간이 이 땅에 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찌 보면 새로운 창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창조물이라는 것은 확실한 창조입니다. 믿기 전이나 믿고 나서나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요. 겉보기로는 다 그대로인 것 같으나 성경 말씀은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했고 그 뿐만 아니라 옛 것들은 다 지나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보라!”고 하십니다.
“보라!”라는 것은 그저 이론적으로만 “믿으면 새로운 창조물이야. 그냥 그렇게 믿어! 그렇게 인정해!”라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고 하시니 우리는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믿는 사람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서는 새로운 창조물과 새롭게 되었다는 표현을 새로운 피조물, 새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되었다는 이 표현을 곰곰 생각해 보고 사 스스로에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과연 새 것인가? 나는 새로운 창조물이 맞는가? 내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 좀 봐! 난 새로운 창조물이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면에서 새롭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외양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사람을 영, 혼, 몸으로 나누는데 우리의 몸은 당장 달라지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우리의 혼입니다.
혼은 보이지 않는데 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혼을 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말을, 성격을, 하는 일을, 추구하는 일을 보고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마태복음은
마 1: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한 마디로 우리를 죄들에서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 마음에 모셔 들였으면 내가 죄들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죄들에서 해방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두고서 새로운 창조물인가, 옛 것은 지나갔는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고후 5:17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과 우리의 신분, 즉 법적인 지위와 현실적인 것과는 약간의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아직 한참 멀었어. 이전에 짓던 죄를 아직도 짓고 마음 속으로도 그다지 변화가 없어.” 라고 자책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변화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되는 것도 있고 시간이 가면서 되는 것도 있습니다.
말씀의 씨를 좋은 밭에 뿌리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뿌리를 내린 후 싹이 나고 자라서 잎사귀가 나오고 열매가 맺혀야 됩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세 해가 지나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나 좀 봐! 예수님께서 나를 이렇게 바꾸어 주셨어.”라고 말할 수 없다면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확실히 새롭게 되기 위해, 옛 것을 빨리 정리하고 죄들을 멀리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몇 가지 말씀들을 찾아보고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골 3:10-11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
여기에서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고 하십니다.
이 새 사람은 어떤 점에서 새로워진 것입니까? 우선, 지식에서 새로워진 것입니다. 이 지식은 누구의 지식이며 어떤 지식입니까? 누가 가르쳐주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지식입니까?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졌다고 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지식이 새로워지려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새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첫째로, 이 세상을 동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생각을 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이 우리 속에 쌓이게 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을 선한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하겠습니다.
벧전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
우리를 새 사람으로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벧전 1:23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우리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알려 주십니다.
벧전 1:22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새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혼을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골로새서 3:10에서는 우리가 새 사람을 입었다고 하셨는데, 엡 4:24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곳에서는 새 사람을 입었다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취학 연령이 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교복을 입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입학 후에도 그 학교 학생으로서 제대로 학생 노릇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으려고 합니다. 항상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롬 12:2에서 생각을 새롭게 할 때 변화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변하기 위해 결심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결심하기 이전에 생각을 새롭게 해야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선하고 받을 만하고 완전한 뜻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은 개역성경에서 “교훈”이라고 번역된 것이 오역이라서 흠정역에서는 “교리”로 바르게 번역하였다는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른 교리를 아는 데에만 너무 치중하다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성경 기록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교제 가운데에서도 성경 기록을 사용하여 서로 책망하고 바로잡아 줌으로써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의로운 삶을 훈련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일에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성품을 훈련해야 하는데 “의로 교육함”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일 1:2에는 “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박혀 있어야 합니다. .
요일 3:6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 5:18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아노니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므로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
이 두 구절이 우리가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사악한 자가 우리를 건드릴 때 미소 짓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죄를 딱 끊어야 하고 흐지부지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죄에 대해 굉장한 저항이 일어납니다. 만일 내게 그런 것이 없으면 과연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히 9:13-14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이집트 탈출할 때 맏아들을 죽이는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 집을 그냥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의 피를 우슬초에 적셔서 자기 집 문 기둥과 문설주에 세차게 내려쳤습니다. 양의 피도 죄로 인한 사망을 면하게 하였는데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가 우슬초에 적셔져서 내 마음에 세차게 뿌려질 때에 내 양심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는 지금 우리 곁에 없습니다. 어떻게 내 양심을 그 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나도 함께 십자가에 달려야 하겠다 함께 죽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나는 죄 덩어리구나 내 속에는 깨끗한 것이 전혀 없구나 하는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십자가에 가서 자발적으로 나를 못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죽고 나면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듯이 우리가 참으로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함께 맛보는 부활입니다. 이 부활을 맛보아야 죄에서 멀어지고 참 생명 가운데 새 사람으로서 하루하루 살 수 있는 힘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신 성령님, 우리 속에 받아들인 생수가 새 우물이 되어 그 성령님께서 새 우물로서 영생을 뿜어 내실 때 우리는 죄와 아주 멀어진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철저히 죽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같이 죽고 같이 일으켜졌거든 이제는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오른편에 앉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여기에 살고 있어도 우리의 위치는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왕좌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왕중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분봉왕으로서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시하게 세상 사람들과 동화되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진 우리는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그것을 추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상만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