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2:9) “그때에 네가 의와 판단의 공의와 공평을 깨닫고 참으로 모든 선한 행로를 깨달으리라.”
나의 의(義) VS 하나님의 의(義)
성도에게 선한 행로는 도덕이나 윤리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진리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리가 가르치는 바에 따라 걷는 것이 곧, 선한 행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로 걷고자 할 때 이를 가로 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의’ 입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의'(義: 의로울 의)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를 뜻합니다. 그러나 부수로 쪼개면, 羊(양양), 我(자아 = 手[손수]+戈[창과])로, “누군가의 손에 양(예수님)이 (사람을 대신해서) 창에 찔려 죽어야 의로워질 수 있다.”는 대속의 메시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는 선한 행위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어주셨다는 사실을 믿었을 때 비로소 얻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받은 성도에게 ‘의’란,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도리는 침례 요한처럼,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는 생각을 품고(요 3:30) 말씀에 따라 살고자 작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 마음의 속중심을 드러내기 위해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시 7:9; 렘 17:10; 몬 1:20).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주의 명령을 도덕적으로나 혹은 윤리적으로 판단했더라면 절대로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했고, 이삭이 죽어도 다시 살아 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창 22:5). 이는 "네 씨를 통해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창 22:17). 하나님의 선한 행로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할 때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판단의 공의와 공평
성도가 하나님의 선한 행로를 깨닫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의 판단의 공의와 공평하심'를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그분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은 ‘공의로우심’ 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통으로 율법을 판단하고 사람들을 판단했습니다(약 4:11). 그로 인해, 예수님께 8번이나 반복되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마 23:13-39). 사람은 누구나 말씀을 버리고 자신들의 지혜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면 하나님의 공의를 망각하고, 공평하게 선한 행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직 선한 행로는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기준을 삼고 살아냈을 때 그분을 경험함으로써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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