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14)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부를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약 5:16)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효능이 있느니라.”
사람의 행복의 조건 중에서 ‘건강’은 절대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신유의 은사를 강조하는 교회들도 많고,병 고침을 받기 위해 교회를 찾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신유집회에 가서 보면 가장 많이 듣는 구절이 이사야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맞습니다. 그분의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화평을 누리게 됐고,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침이 육신의 병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 이는 그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라.”(사 53:11). 보는 바와 같이, 이 구절은 의롭게 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 고침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불법으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의 죄 병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며, 성경은 미래완료형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고난을 당하실 때 우리의 죄 병이 치료될 것에 관하여 확신을 주기 위한 계시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육체의 질병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죄 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죄 병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주저앉은 인간을 일으키시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소경의 눈을 치유하신 것은 죄 병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영적인 눈에 대한 치유를 의미하며, 나병을 치유하신 것은 죄에 대하여 감각없이 죽어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외에도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죽음에 대한 부활을 가리키는 기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1차적으로 믿음을 통한 영적인 회복과 관련돼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질병을 치유했던 것도 모두 이와 관련돼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기록(완전한 것)이 완성되어 갈수록 그 능력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고전 13:8; 고전 13: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인들 중에서 병든 자가 장로들. 즉, 목사에게 기도를 청하면 목사는 병든 성도에게 가서 기도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믿음의 기도’는 목사의 일방적인 은사로 인해 치유시키는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와 기도 받는 자가 모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환자가 교회 지체들 중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들이 있다면 그 지체에게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 뒤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너희(지체들을 의미)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효능이 있느니라.”(약 5:16).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질서 가운데 기도를 드리면 주님은 그 기도를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치유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병을 얻으면 신유은사 집회하는 교회들을 찾아다닌 다거나,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아프면 병원으로 먼저 가야 합니다. 그래도 낫지 않는다면 목사에게 기도를 청해야 하며, 혹시 지체들에게 잘못한 일들이 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때 사과를 받은 지체는 아픈 지체를 용서를 하고, 아픈 지체를 위해서 목사와 함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병이 치유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영적인 질서 안에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주님은 신비주의를 따르는 일을 믿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영적인 질서를 따르는 것을 믿음으로 보십니다. 믿음의 질서 안에서 믿음의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
3
98
0
이전글 |
QUICK LINKS